14년 차 점역사가 말하는,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진짜 이유

점역사란?

 

시각장애인을 위해 인쇄 자료를 점자나 전자책으로 바꾸는 사람

 

한국 시각장애인의 수는 미등록 장애인까지 합치면 약 30만 명에 이른다. 이중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1~3급의 중증장애인은 4만~5만 명이다. 이들은 앞이 보이지 않지만, 그 때문에 세상을 향한 호기심은 정상인보다 더하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모든 세상일이 궁금하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지적 호기심도 크다.
그런 ‘세상으로 향한 문’을 열어주는 열쇠 중 하나가 점자도서다(시각장애인들에게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책으로는 ‘녹음도서’와 ‘전자도서’도 있음). 그리고 이 점자도서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점역사’라고 부른다. 직업군이나 자격증 분류에는 ‘점역사’가 없다. 공식 자격증 이름은 ‘점역교정사’다. 그러나 업무 현장에서는 ‘점역사’와 ‘교정사’가 분류된다. ‘점역사’는 점자도서나 전자도서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것을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교열(검열)하는 사람이 ‘교정사’다.
[네이버 지식백과] 점역사 - 시각장애인을 세상 속으로 이끄는 안내자 (직업의 세계, 엄민용)

 

 

 

 

 

 

시각장애인을 위한 숨은 직업, 점역사로 살아간다는 것

저는 서울에 위치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14년째 점역사로 근무 중입니다.
점역사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점자나 전자도서로 변환하는 전문 직업이에요.

"점역사가 뭐예요?"

직업을 소개하면 열에 열 명은 되물어보세요.
"점 치는 사람 무당이냐", "종이에 점 찍는 일이냐"는 우스갯소리도 들었고요.
하지만 점역사의 역할을 설명해 드리면 대부분 “정말 멋진 일 하시네요”, “대단하세요”라는 반응을 보여주세요.

봉사에 관심 없던 나, 점역사를 선택한 이유

사실 내가 어려서부터 장애인이나 봉사에 대한 남다른 사명감이 있어서 이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곳에서 일하기 전에는 봉사활동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죠.
그런데 취업 준비 당시, 돈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고,
마침 점역사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죠.

 

그때는 더 높은 연봉의 회사에 합격한 상태였지만,
뭐에 씌인건지 지금 점역사를 하지 않으면 평생 못할 것 같단 생각에 점역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내가 이 기관에 들어온 후로도 점역사를 정말 많이 채용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자주 뜬다는 걸 알았더라면 난 그때 지원하지 않았을 수도...)
가끔 생각해요.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적성에 맞는 일이 주는 보람

하지만 다행히도 점역이 내 적성에 잘 맞았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책을 만들고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점자(전자)책을 더 많이 제작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고

도서 제작 외에 다양한 도서 관련 프로그램 기획하고 하는

이런 일들을 통해 얻는 보람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역업계에서 14년이나 일하고 있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됐네요.

또 어릴 때부터 손으로 하는 것들을 좋아해서인지, 남들보다 손이 좀 빠른데, 
이것도 나름 재능이었던 건지
빠른 손놀림은 점역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오래 지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점자 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

오랜 기간 한 가지 일을 하며 경력을 쌓다보니, 이제는 전문성도 생겼고, 
현재는 기관 점자 강의 메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점자 업무를 메인으로 하고 있지 않고,  
또다른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있어요.
하지만 점역은 여전히 제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월급보다 큰 가치, 일의 보람

여전히 월급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보람,
그리고 내 일을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는 느낌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해줍니다.

오늘도 저는 “재미있게 일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점역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